멘토가 되는 법

6 분 소요

2021 고등학교 SW 진로 멘토링 참여 후기

멘토는 하늘과 같아서

초등학교 시절, 수도권의 모 교육대학에서 진행하던 STEAM* 캠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때 Scratch** 를 처음 접했고, 같이 갔던 친구와 게임을 하나 만들어서 발표회를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10년도 더 넘은 일이기에 이 이야기를 복기하면서 이때도 Scratch가 있었나 싶어 뒤져보니, 오래된 버전의 Scratch화면이 눈에 익다. 아마 극 초창기의 Scratch로 수업을 진행하였던 것 같다.

*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and Mathematics. 과학기술에 대한 학생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고 과학기술 기반의 융합적 사고력(STEAM Literacy)과 실생활 문제 해결력을 배양하는 교육

** MIT 미디어 연구소에서 개발한 그래픽 기반 교육용 프로그래밍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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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시된 Scratch 1.0 화면 - Scratch.mit.edu

그 캠프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러니까 교수님들과 대학생들은 나에게 하늘과 같아 보였다. 초등학생의 눈에는 당장 세 살 많은 중학생 형들도 그렇게 어른 같았는데 대학생은 어떠하였겠나. 나는 굉장히 열정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는데, 누나들이 나름 귀여워해 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그 학부생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제는 같은 경험을 반대의 위치에서 해볼 만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나는 멘토가 되기에 너무 못났는데?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지역의 한 고등학교 SW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시작 전에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불만이었다. 멘토링을 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혜가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일단 초등학생보다는 더 경험과 지식이 많은 것 같기는 한데, 중학생은 잘 모르겠고, 고등학생들에게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멘토링을 무사히 마쳤으며, 이 글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소프트웨어 진로 멘토링의 참여 후기이다. 간단하게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SW 진로 멘토링

멘토링은 총 20시간 진행되었으며, 7월부터 10월 말까지 4개월간 이를 완료하였다. 멘토링은 소프트웨어 또는 진로와 관련된 상담이 주를 이루었다. 총 16주의 기간 동안 추석과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 약 12주 동안 매주 한 번 멘토링을 진행하였다. 7월 초에 진행했던 사전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진행 과정 안내와 멘티 배정이 이루어졌고, 멘토링 시간 동안에는 사전에 준비했던 토픽에 관한 영상이나 블로그, 웹페이지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 주에 궁금한 질문 하나 정도를 멘티 두 분에게 반강제로 (농담이다) 작성하도록 하였고 다양한 질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멘토링의 각 주 차별 주제는 다음과 같다. 아마도 아래의 주제 중 하나로 블로그 글을 작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열두 가지 주제

  1. 자기소개
  2. 대학교 SW 특기자 전형
  3. IETF 학회 참가 후기
  4. 오픈소스 컨퍼런스란?
  5. CPU는 어떻게 작동할까
  6. 창업과 창업 지원 프로그램
  7. 학부 연구생 이야기
  8. IT 기업의 채용공고 둘러보기
  9.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
  10. 온라인 저지
  11. 손주은이 말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
  12. 멘토와 멘티, 이 블로그 이야기

그때그때 재미있어 보였던 이슈들을 해당 주차의 주제로 삼았기에, 일관성 없이 아무 이야기나 한 것 같다. 다음은 멘티 두 분에게 공유해도 된다는 동의를 얻은, 멘티 두 분의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이다.

열 가지 질문

  1. 물리학 등 전공과목 이외에 이수하게 되는 과목을 공부하는 데에는 어려운 점이 없으셨나요?
  2. 프로그래머는 다른 직업보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나요?
  3.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의 역사에 대해서 배운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그러면 어째서 배우는 건가요?
  4. 프로그래밍 분야는 직업 만족도가 높은가요?
  5. 프로그래머가 ‘~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스카우트란 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나요?
  6. 박사로 진학하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7. 프로그래밍과 수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프로그래밍의 어떤 분야에서 수학이 많이 사용되나요?
  8. 인터넷에서 형성된 대학원생의 이미지가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요?
  9. 논문을 쓸 때는 주제가 새로워야 할 텐데 주제를 하나도 겹치지 않고 논문을 쓰는 것이 가능한가요?
  10. 외국과 우리나라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의 인식 차이가 심한가요?

내가 했던 답변들은 너무 부끄럽고, 어느 정도 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공개할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답변을 제대로 못 하거나 할 수 없는 내용도 있었지만, 멘티분들이 이러한 점을 궁금해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이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무엇을 얻었나

그럴듯해 보이게 작성한 보고서와 다르게 멘토링은 굉장히 허접하게 이루어졌다. 말을 더듬었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고, 이야기 중간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 주제 선정부터 결론까지 이어지는 맥락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즉흥적으로 멘토링을 진행한 탓이고, 다 멘토가 부족한 탓이리라.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최선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처음 멘토링을 진행하는 멘토 아래에서 같이 고생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멘티 두 분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별다르게 멘토가 되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멘티 두 분에게 많이 배웠기 때문에, 모두가 모두에게 멘티이자 멘토가 아닐까.

굳이 따지자면 돈 받는 쪽이 멘토인 것 같기는 하다.
활동비 2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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